아봐타 타임즈
의식을 탐사하기
제 13호
어떤 신념들은 자주 표출되지만 삶에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어떤 신념들은 잘 표출되지 않거나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삶에 거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셨나요?
해리 팔머
사람들에게 무엇을 믿는지 물어보면 자기들이 원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그럴듯한 이야기, 여기 저기서 물어보고 가장 칭찬 받을만한 것들을 늘어놓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다고 내세우는 것을 정말 믿고 있을까요? 대부분 그 답은 아니요 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신념을 좀 더 파고들어가면 그들의 행동을 만들어내고 현실을 지어내는 진짜 신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선택했든 교의주입 되었든, 진짜 신념은 당신이 지각하는 것과 그것을 해석하는 청사진을 만들어냅니다. 의식은 보통 이 청사진에 의해서 어떤 것을 지각하고 또 어떤 것은 무시합니다. 진짜 신념을 바꾸면 마음의 상태를 바꿀 수 있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보는 것을 바꾸어 놓을 수 있습니다. 진짜 신념은 당신의 지각 범주에서 물체를 사라지게도 합니다.
최면술사가 실험 대상자에게 최면을 걸어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그 사람은 신발을 벗습니다. 그리고 최면술사는 그 사람이 깨어나면 신발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신념(최면 중 제안이라고 합니다)을 심어 놓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그 사람이 앉아있는 의자 코 앞에,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놓습니다.
최면술사는 숫자가 줄어들수록 점점 깨어나 1이 되면 완전히 깨어나게 될 것이며 기분이 매우 상쾌하고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고서 다섯부터 거꾸로 숫자를 셉니다.
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깨어나 미소를 띠며, "별로 좋은 실험 대상자가 못된 것 같아 죄송해요." 라고 합니다.
최면술사는 그 사람의 발을 가리키면서 "신발이 어디 있죠?" 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은 신발이 사라져 버려 잠시 당황스러워합니다. 주변을 둘러보지만 코 앞에 신발이 있는데도 지나칩니다. 그리고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최면술사는 더 확실하게 질문합니다. "오늘 이 곳에 오실 때 신발을 안 신고 오셨다는 말씀이세요?"
관객들이 웃습니다. 그러자 그 실험대상자는 어색하게 변명을 합니다. "네, 저는 그래요!"
"이 공연장에 신발을 안 신고 오셨다구요?"
"저는 이런 식으로 항의를 표시합니다," 하고 실험대상자가 확고하게 답합니다.
최면술사가 질문합니다. "무엇을 항의하시는 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에게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시스템에 항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발을 신지 않으신거군요?"
"그렇습니다."
최면술사가 코 앞에 있는 신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손으로 집어 들고 바닥을 가볍게 칩니다. "이 신발, 선생님 것 아니세요?"
실험대상자는 잠시 신발을 쳐다봅니다. 그의 마음에 눈 앞에 있는 신발이 새겨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신발을 자기 것이라고 새겨 놓습니다.
"아, 네. 제가 무대에 올라왔을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벗어놓았어요. 새로 산 것이라 아직도 바닥이 미끄럽거든요."
이 상황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최면술사가 심어 놓은 신념이 그 사람의 지각 범주에서 신발이 사라지게 했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속여 잃어버린 신발에 대해 그럴듯한 설명을 지어내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듯한 그 설명은 그 사람이 그렇게 경험하게 된 진짜 원인이 아닙니다. 그럴듯한 설명은 그 사건 후에 만들어낸, 내세우는 신념입니다. 그렇게 경험하게 된 진짜 원인은, '나는 깨어나면 코 앞에 신발이 있어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신념 또는 이 비슷한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최면에 의해 심어진 투명한 신념은 마음으로 하여금 뭔가를 선택적으로 지각하게 만드는 정신의 청사진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마음이 수행해야 할 최고 지령, 즉 마음의 존재 목적은 지각한 것이 이치에 맞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마음은 설명을 지어냈을 뿐 아니라 난데없이 그 설명에 새로운 신념을 덧붙여 꾸며 놓았습니다. "나는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는 시스템에 저항하고 있다." 이제 그 사람은 거짓된 삶을 삽니다.
그 실험 대상자는 왜, "신발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게 정직한 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모른다는 무방비 상태에 빠뜨렸을 것입니다. 모르면 위험할 뿐 아니라 수치스러울 수 있습니다. 모를 때 일어나는 반응은 추측, 가정 그리고 착각이 시작됩니다.
어떤 심리 분석학자들은 이것을 방어기제, 즉 자존감에 잠재적으로 위협이 되는 것을 피하는 방법 또는 자기 이미지와의 갈등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는 부족한 정보가 고통스러워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정당하게 만들고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모르는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취약하다는 고통을 겪기 보다 현실을 왜곡하기로 선택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게 바로 최면에 걸린 실험대상자가 밟은 길입니다.
실험대상자는 다른 사람이 심어놓은 특정한 신념 때문에 생긴 부족한 정보를 만회해보려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방어기제는 모든 종류의 투명한 신념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음은 올바르려는 충동을 가지고 있고, 이 충동은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이 사실로 믿지 않는 것을 내세우게 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진짜로 믿는 신념과 경험 사이에 명백한 관계가 있음을 설명해줍니다.
아봐타 코스의 이야기
아봐타 교재에 의하면, 아봐타는 무엇인가요?
아봐타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아래로 또는 품위있다는 뜻을 지닌 "아봐"와 건너다 또는 통과하다는 뜻의 "타라"에서 왔습니다. 이 단어는 힌두교 신화에서 자발적으로 몸의 형태를 취하여 피조물의 세계로 들어온 신을 가리킵니다. 아봐타 교재에서 이 말은 한정 없는 근원 의식의 길을 가면서 "아래를 향해" 창조하고 자신을 자신의 창조 속에 구현해 내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용합니다. 아봐타 코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학생에게서 기대하는 것이 바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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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봐타가 있으면 잃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봐타가 된 사람은 누구나 집합의식에 관용과 이해력을 훨씬 더 높이 증가시킵니다. 아봐타로 자기 자신을 돕는 것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돕는 것입니다. – 해리 팔머
투명한 신념
다시 떠오르기 ® 에서 발췌
당신이 부지불식간에 어떤 신념을 통해 행동할 때, 그 신념은 투명하다.(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투명한 신념은 도움이 되는 일이 드물다. 사실 그것은 결정적으로 자기를 약화시킬 수 있다. 투명한 신념들은 거의 모두가 자기파괴적인 것으로서, 당신이 뭔가 이성을 잃었을 때 나타난다.
투명한 신념이 나타나는 첫째 현상은, 뭔가가 의심할 나위도 없이 옳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그저 그런거야. 그게 바로 나야. 이것이 바로 증거이다! 그런데 잇달아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그런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실은 그 신념 자체에서 나온 것임을 발견하는 것인다. 그리하여 하나의 패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투명한 신념들은, 당신이 스스로 그것을 나타나게 유도해내고는 뒤로 물러서서 자기가 말한 것을 살펴볼 때 찾아 낼 수가 있다. 투명한 신념들은 흔히 올바르려는 욕망 밑에 숨어 있으므로 투명한 신념을 찾아내는 데는 어느 정도 무방비 상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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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오르기®:
의식 탐사를 위한 기법들
해리 팔머 지음
다시 떠오르기란 자신을 묶고 있는 낡은 창조들을 풀어헤지고 다시 순수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작용을 말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시 떠오르기는 이러한 오래된 의문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입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의 의식의 배후 구조물을 탐사해 봄으로써 이 답들을 찾게 됩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이 어떻게 짜여져 움직이는지 - 혹은 왜 생각대로 안 풀리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과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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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한 순간들
나는 지난 20년 동안 기적 코스의 학생과 간사활동을 했는데, 아봐타 다시떠오르기 코스는 교재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을 체험을 통해 터득 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알았다. 신념이 투명했다가 더 이상 영향을 끼치지 않게 되고 관점이 더 넓어지거나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로웠다. 놀랍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으며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을 기대한다. -S.S.
해리께. 오늘 제 동생 레베카가 다시떠오르기를 마치러 왔습니다. 동생은 2년 전에 다시떠오르기 하루를 했는데 마져 할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다시떠오르기로 뛰어들기 전에 의지 미니코스를 했습니다. 동생은 자기 삶과 가족의 문제를 알아차리고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휴이는 여태까지 전해 내려온 가족의 신념으로 인해 일어난 학대를 멈췄습니다.
확대 연습을 할 때 지난 몇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나"가 깨어났습니다. 저는 난생 처음으로 온 마음과 영혼으로 동생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아이덴티티도 걸치지 않은 채 껴안고 울었습니다. 동생은 다음 국제 코스에 오기로 했습니다. 새 아봐타가 깨어나고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와 사랑을 전하며 -L.W.
이 글을 읽는 분께. 만일 마스터 코스가 아봐타 코스와 비슷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마스터 코스는 아봐타 코스와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입니다.
하루 하루가 새 껍질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이 점점 더 깨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매일같이 더 현재감을 느끼고 매일같이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됩니다.
그럼, 저에게 마스터 코스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글쎄요... 진짜였습니다! 진짜로 진짜였어요!! 아봐타 코스보다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부끄럼을 타는 사람입니다. 제 주변에서 사람들과 의사 소통하는 것이 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아봐타의 세상에서는 정말 다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곧 훨씬 더 편해집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어울려 노는 유치원 같습니다. 행복하세요, 아셨죠?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아직 마스터 코스를 가지 않았다면 정말 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스터 코스를 마친 분들께는 계속 앞으로 나가 언젠가는 프로 코스와 위저드 코스에서 만나기를 바랍니다. 알 수 없죠. 프라이머리가 있잖아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해요. 그리고 당신의 삶을 충만하게 즐기시기 바랍니다. –J.L.